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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공략.png

 저수궁의 대청소가 있는 날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 귀비가 친히 지시를 내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바로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먼지 나는 것은 딱 질색이라며, 대청소가 시작되기도 전에 궁을 나서 저녁에나 돌아오던 귀비가 말이다!
 저수궁 궁인들은 의외의 사태에 나름대로 대응했다. 어디의 누구 소주는 고 귀비의 목소리만 들려도 무릎에 힘이 풀려 덜덜 떤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저수궁의 밥을 먹고 사는 환관, 궁녀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수궁 주인이라는 변수가 그리 간단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닌지라, 당연한 결과로 일의 진척은 평소보다 훨씬 느려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고 귀비는 본래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일이 이루어지는지 몰랐기에(혹은 관심이 없었기에) 그걸 문제 삼지는 않았다.
 운율을 배운 새가 지저귀듯 높은 음성이 짜랑짜랑 울렸다. 억양은 완벽한 북방의 것이지만 극적으로 과장된 요소가 없지 않다. 이처럼 글자에 기교를 부리듯 끝을 길게 빼는 어투는 이 자금성에서 오직 고 귀비만의 것으로, 공작 깃털 부채를 한들거리며 오연하게 내딛는 그녀의 걸음걸이와도 똑 닮았다.


 “저기 남쪽 벽의 그림은 조금 더 위로 걸어라.”
 “아, 예! 예, 마마.”
 “황상께 곤극 노래를 불러드릴 때 본궁의 배경으로 삼으려 걸어두라 했더니, 옷자락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자리에 걸어두면 어쩌자는 건지
….
 “잘못했습니다, 귀비 마마. 이, 이 정도면 괜찮겠는지요?”
 “흐응, 그래.”


 고 귀비는 거실을 둘러보며 두어 가지 지시했으나 금방 흥미를 잃은 듯 돌아섰다.
 사실 큰 흠이 있을 리 만무했다. 고 귀비가 매일같이 생활하는 공간에 뭐가 있었으면 진작에 누가 경을 쳐도 쳤을 터. 대청소 날이 되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게 있다면 다른 궁의 모략을 의심해야할 것이다.
 그보다는 고 귀비가 평소에 얼씬도 하지 않는 곳이 문제였다. 이를테면


 “여긴 됐으니 옷방으로 가자.”
 “그, 귀비 마마. 옷방에는 물건이 많아 거치적거리실 것입니다.”
 “거치적거리다니, 무엇이? 설마 본궁이 너희들에게?”
 “예에? 아니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먼지가 나서

 “너는 본궁을 바보로 아느냐? 설마 그런 것도 모르고 있을까 봐서 가르치려 드나?”
 “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아, 소란스럽게 굴지 마라. 멍청한 소릴 했으면 입을 다물고 물러나거라.”

 사실 그만하면 고 귀비는 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눈치 없는 소리를 하면 즉시 날카롭게 질책하지만, 말만 모질게 할 뿐 엎드려 뺨을 치며 용서해달라 애걸해야 하는 체벌은 없었다. 정말로 심사가 뒤틀렸을 때는 눈에서 불을 뚝뚝 흘리며 호령하고, 피가 비치도록 때리거나 구슬 따위를 삼키게 하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 무슨 이유로 틀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 고 귀비의 심사였다. 혹독하고 변덕스러워 폭염과 혹한이 왔다 갔다 하기가 예사였으므로, 저수궁 궁인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고 귀비의 뒤를 따랐다.
 그래도 개중 눈치가 좀 있는 치들은 몸을 삼가되 곧 죽을 것처럼 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호라.”


 고 귀비의 관심을 가져갈 사람이 따로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틀어박혀 있었구나.”


 최근 들어 고 귀비가 눈에 띄게 총애하기 시작한 궁녀가 오늘 옷방 정리를 맡았다. 말간 얼굴, 섬세한 눈매에 그만큼의 자수 솜씨를 가진 궁녀였다.


 “아만.”


 옷방에서 일하던 궁녀들은 고 귀비가 들어서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몸을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키가 크고 늘씬한 고 귀비의 눈에는 궁녀들의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똑같은 머리 모양에 똑같은 장식을 꽂았으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고 귀비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장 한 사람을 지목했다. 물론 그것이 바로 아만이었다.
 이름을 불린 아만이 약간 어색한 표정을 띠며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은지 표정을 고치려고는 하는데, 그조차도 썩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되고 말았다.
 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 귀비는 아만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만이라는 이름이 태어났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불과 몇 달 전에 새로 얻어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새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황궁에서는 부르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진 아만의 본래 이름에, 고 귀비 자신과 같은 글자가 들어갔다는 사실도.
 수방 상궁이 아만에게 피휘를 시킨 것은 고 귀비라는 화(禍)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자금성에 파다하게 퍼진 악명이 제몫을 단단히 한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만의 본명을 알게 되었을 때 고 귀비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물론 한두 마디, 이를테면 ‘천한 것이 감히?’ 따위의 불평을 뱉기는 했다. 그 말을 전하면서 못된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는 궁녀와, 찻잔과 찻물의 김으로 표정을 가린 채 귀를 쫑긋 세우는 후궁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자금성에서 가장 성질 나쁘고 거만한 최고위 후궁이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소소한 값들만 모아도 천금이 넘는 것이다.
 어쨌거나 고 귀비가 아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름이라는 것은 맞았다.
 시작만은 그랬다는 말이다.

 “귀비 마마.”
 “이건 무슨 꼴이지?”


 고 귀비는 아만의 행색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아만의 팔꿈치 위까지 시커먼 먼지로 물들어 있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아만이 두 팔을 등 뒤로 돌려 감추며 우물거렸다. 고 귀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쯧. 손에 들고 있는 건 무엇이냐?”
 “아, 이것은… 옷장 뒤로 넘어가 있기에 꺼냈습니다.”
 “무엇이냐고.”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글자가 새겨진 걸 보았습니다. 여기, 이쪽에요.”


 그러면서 아만이 내민 것은 그리 크지 않은 비단 꾸러미였다. 아만의 소매만큼이나 먼지에 푹 절어 있고 본래의 색이 바랜 상태였는데, 매듭이 풀려 벌어진 틈으로 안에 든 것이 슬쩍 비쳐 보였다.
 고 귀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붉은 색에 금실로 놓은 자수가, 아만의 말대로 무슨 글자인데


 “흐응.”
 “귀비 마마? 풀어 볼까요?”
 “그럴 것 없다. 태워 버려라.”
 “예?”
 “태워 버리라 했다.”


 싸늘하게 내뱉은 고 귀비는 휙 돌아섰다.


***


 그리고 한 시진 후,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말을 안 듣는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 말할 짓을 왜 했지?”


 옷을 갈아입고, 고 귀비가 태우라 명했던 꾸러미 속의 손수건을 든 아만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귀비 마마께 의미가 큰 물건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차마 태워 없앨 수 없었다는 아만의 말이, 솔직히 조금 기특하게 들렸다. 고 귀비는 손을 젖혀 교묘한 손짓으로 입매를 감추었다. 화려한 호갑투에서 반사되는 빛은 내심을 은폐하기에 충분할 터였다.


 “그렇다면 본궁이 왜 태우라고 했겠느냐?”
 “
…….
 “건방지게 굴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렴.”


 하지만 유순하면서도 묘하게 반항적인 데가 있는 궁녀 아만은, 냉큼 물러가는 대신 말대꾸를 했다.


 “그렇지만 귀비 마마.”


 저 가느다란 몸 안에 있는 간이 커 봤자 얼마나 크겠나 싶은데, 아무래도 간을 어디 밖에 떼어 두어서 저리 겁이 없는가 싶었다. 고 귀비는 얼마간의 당혹감과 얼마간의 신선함, 그리고 얼마간의 기대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뭐냐?”
 “오래된 것은 실수로 잃어버려도 애석하고 아쉬운데, 이리 우연히 다시 찾은 것을 한 번 살피시지도 않고 태워 없애면 나중에 후회하실지도 모르잖습니까.”
…….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봐 주시면 아니 될까요?”


 과연 아만은 고 귀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참 신선하게 쓸 데 없는 소리를 어찌나 간곡하게 하는지. 고 귀비는 웃음을 참으며 아만의 말을 경청했다.


 “더구나 이걸 만든 이는 귀비 마마를 위해 많이 애쓴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그걸 어찌 알지?”
 “그건
….
 “본궁을 구슬리려고 생각나는 대로 뱉는 게냐?”


 그리고 신경질을 내는 척 놀리기도 했다. 능청스럽게 받아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화들짝 놀라 움츠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젓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아니면 뭐지?”
 “솜씨가 그리 좋지 않아서요.”
 “
…….
 “그래서 귀비 마마의 마음에 차지 않는 건 이해합니다만
….


 그랬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쪽이 당했다. 고 귀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풋.”
 “
…….
 “아하하하!”


 고 귀비가 박장대소하자 깜짝 놀란 아만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실 고 귀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의 솔직한 말’ 같은 것을 경멸하는 쪽이었다. 아둔하여 그러는 경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너그럽게 받아들여 줄 것을 기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경우의 순진함을 정말로 순진하다고 할 수 있는가? 호의를 얻으리라는 믿음 그 자체가 간교하지 않은가? 궁인이든 비빈이든, 그런 식으로 행동하던 치들은 고 귀비에게 호된 맛을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 아만에게만은 허튼소리 말라 모질게 굴어지지가 않았다. 정말 별일이지.
 고 귀비는 숫제 무릎을 탁탁 내리치며 한참 동안 깔깔 웃었다. 날렵하게 그린 눈매에 눈물이 맺혀 번질 정도로, 아주 통쾌하고 요란하게. 그리고 겨우 진정되어 웃음이 잦아들 즈음, 여전히 놀란 토끼 꼴을 한 아만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히 충동적으로.


 “이건 본궁이 혼인했을 때….


 가볍게 운을 떼던 고 귀비는 멈칫하며 입매를 뒤틀었다. 무심코 뱉은 표현 때문이었다. 고 귀비는 정실이 아니므로, 감히 부군과 혼인했다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신나게 웃어젖히고 난 다음이라 마음이 가벼워져 잘 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


 “아니, 측복진이 되어 보친왕부로 들어갔을 때.”


 고 귀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정정했다.
 만약 아만이 아니라 황후나 다른 후궁들 앞이었다면, 고 귀비는 일부러라도 자기 말을 고치지 않았을 것이다. 말실수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거니와, 부찰 황후의 속을 긁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다버리느니 혀를 깨물고 말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고 귀비의 오만에 상처 입거나 기함하거나, 혹은 분노할 만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녀 자신밖에는.


 “왕야와 나눠 가지려고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 귀비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조금 술수를 부렸다. 지금의 황제가 아닌 과거의 보친왕을 거론한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같은 사람이며 지금껏 변함 없음을 알면서도.
 그 시절의 홍력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덜 막막한 남자였다. 까마득한 담장과 머리 아픈 미로, 황금기와로 뒤덮인 자금성 그 자체가 되기 전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만으로 마음을 보답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순진한 고녕형이 헛된 희망을 품을 정도이기는 했다.
 유력한 황태자감씩이나 되지 않더라도 애신각라 황실의 황자, 평범한 부부처럼 지낼 수 있으리라 바란건 아니었다. 어려서 순진했어도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더라도 살을 맞대고 어쩌면 아이도 생길 사이, 잘만 하면 서로의 일부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여 보친왕부로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해 보았다. 갖고만 있었지 열어 본 적도 없는 반짇고리를 털어 가장 좋은 실을 바늘에 꿰고, 아까워 묵혔던 비단을 잘라 수틀에 끼워서….


 “즉 본궁이 직접 만들었다는 말이지.”
 “아.”
 “솜씨가 어떻다고?”
 “그러니까, 아하하. 다시 보니 괜찮은 듯도 합니다
?”
 “오늘부터 아침저녁으로 거짓말하는 연습을 하도록 해라.”
 “예?”
 “지금은 얼굴이 하도 얇아 단명할 상이다.”
 “
…….


 고 귀비는 핀잔으로 아만의 입을 틀어막고, 그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빤히 쳐다보았다.
건네지 못한 까닭은 별 것 없었다. 때를 노릴 때마다 보친왕이 정복진 부찰씨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뭐, 아주 가끔은 휘발나랍씨와 함께 있었던가?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크게 낙심했던 순간에는 늘 부찰씨가 있었다.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할 말을 아주 고심해서 준비했었다. ‘왕야와 첩의 이름을 나란히 새겼습니다. 몸은 함께하지 못해도 마음만은 늘 함께였으면 하는 뜻으로요. 왕야께서 첩을 생각하지 못하시더라도 첩이 매일 왕야를 생각하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지금이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줄줄 읊을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때는 부끄러워 다 못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만큼 간절한 진심이었다.
 보친왕부는 쉴 새 없이 극을 올려야 하는 무대가 아니었으며, 고 복진이 했거나 하고 싶었던 말들 또한 마음과 상관없이 읊어야 하는 대사가 아니었다. 천하에서 가장 넓고 높은 무대인 자금성, 그 안에서 황제가 가진 일품 배우로 유명한 고 귀비와는 다른 것이다.
 아, 그렇지. 그랬던 당시의 고 복진은 제 이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그게 또 다른 점이었군.
 고 귀비는 고 복진을 추억하며 턱을 괴었다.


 “너, 녕(寧)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모양이라면 압니다. 여기 이 글자이지요.”
 “그래, 그럼 뜻도?”
 “
가르침을 주십시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에 십분지 일이라도 알았더라면 이름을 버리기라도 했을 텐데.


 “집[部]의 지붕 아래 먹을 것이 그릇[皿]마다 수북이 담겨 마음[心]을 편히 내려두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예
….


 홍력이 불러주기 시작한 이름을 바꿀 수 없으니 안고 가야겠다고, 한심한 생각이나 하는 대신에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보위에 올라 자금성에 들면 아름다운 봉호를 선사해 주지 않을까,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을 품지도 않았을 테지.
 고빈의 딸 고녕형은 당금 황제의 비빈 중 황후 다음가는 귀비로서, 황제의 총애로 말미암아 세도가 하늘에 닿았다고 한다. 만주 명문 출신의 비빈들조차 그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하고, 한족 출신인 고씨가 이름[高]대로 승승장구하며 그녀의 뒤를 받쳐 준다고도 한다.
 무엇 하나 맞는 게 없는 헛소리들이다.
 고 귀비, 영영 고빈의 딸이며 황후의 아래에 있어야 하기에 황제로부터 이름 하나 받지를 못한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옛적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하나 여기는 황궁이다. 그런 팔자가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 말씀은
….


 아만이 눈을 깜박였다. 이해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저 그런 집안에서 궁녀로 들어온 아만의 눈에, 고 귀비의 저수궁은 사시사철 먹을 것이 넘치고 훈풍이 도는 극락처럼 보일 테니 당연했다. 그 무엇도 부족하지 않고 과할 정도로 넘쳐 흐르는데, 고작 녕 자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다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
 역시 너도 헛똑똑이가 아니냐. 누굴 닮았나 했더니, 그 시절 고녕형을 닮아서는. 고 귀비는 픽 웃었다.


 “금접시에 든 음식이 향기롭고 먹음직스럽다고 덥석 집어먹었다간, 독으로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 나자빠지기밖에 더 하겠느냐.”
 “도, 독이요?”
 “그래! 여기서는 지체가 높고 귀할수록 따뜻한 음식을 먹지 못하지. 아랫것에게 먼저 먹여 죽지 않는지 살펴보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그때서야 한 입 먹을 수 있으니 말이야.”
 “아, 그, 그렇습니까.”


 실제로 식사 법도가 그만큼 엄중한 사람은 황제 정도였지만, 새하얗게 질리는 아만의 얼굴을 보니 심술궂은 흥이 돋았다. 고 귀비는 눈썹을 치켜들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아만은 찔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깜짝깜짝 놀라는 꼴이 참 웃기면서도 걱정이 되어서 원…. 고 귀비는 답지 않게 어리고 약한 것이 염려가 되어, 나름대로는 조언이랍시고 한 마디 더 했다.


 “혹시 누가 네게 좋은 음식을 주거든 반드시 먼저 먹여보도록 해라. 독이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 예
….
 “네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
…….
 “쯧.”


 본인도 그리 생각하는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고 귀비는 혀를 차고, 앉은 자리에서 자세를 바꿔 비스듬히 드러누우면서 손을 내저었다.


 “피곤하구나, 아만. 수방에 맡겨 둔 본궁의 베개를 가져오너라.”

 “아, 예!그런데 이 손수건은 어찌합니까?”
 “태워 버리라는 말을 몇 번이나 더 해야 들을 테냐?”
 “하지만 마마께 소중한 추억이라고

 “추억은 무슨. 거기 새긴 글자가 얼마나 한심한 뜻인지 지금껏 일러주었거늘.”


 아만이 약간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원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라고 마음이 안 좋은 듯싶었다. 그렇지만 고 귀비의 이름에도 들어가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로 태우기는 싫은데 같은 말을 다시 하지도 못하는 심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보였다.
이상한 데서 고집이 있었다. 하여간 손재주 하나 빼고는 황궁에서 사는 데 필요 없는 것들만 긁어모아 갖고 있지. 고 귀비는 일부러 미간을 확 찌푸리면서 아만을 다그쳤다.


 “황상의 휘도 함께 있는데 갖고 있다가 대역죄인 소리를 듣고 싶으냐?”
 “헉.”
 “수방에 가기 전에 싹 태우고 재도 버려라.”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황제 운운하며 겁을 주니 먹혀들었다. 황제를 겁내지 않는 인간이란 세상에 없으니까.
정말로 약한 피로감을 느낀 고 귀비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누가 앞을 막거든 감히 저수궁 궁녀의 앞을 막느냐 호통 치고 따귀를 치도록 해라.”
 “예에? 그렇게까지
….
 “본궁의 아래에 들어왔으면 이름값을 해야지.”


 그 이름이라는 게 악명이니 앞으로 참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성싶었다. 고 귀비는 피식 웃었다.


 “얼른 가거라, 아만.”

© 2019 각 작품의 저작권은 작업하신 작가님들께 귀속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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