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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의 사랑이 과하면 반드시 비극을 부르는 법이다. 수운상회 회장 딩이추도 예외가 아닌바 그의 사랑은 대부분 하나뿐인 아들 딩마오에게로 향했다.

딩회장은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아들에게 상회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도 수운상회 차기 회장으로서 상회의 품격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어야만 했다. 이를테면 신학문 같은 것 말이다. 딩회장은 망설임 없이 아들의 이름으로 된 독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순전히 아들을 위한 지독한 사랑, 그 하나 때문이었다.

 

몇 달 후 베를린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이 수운상회 앞으로 도착했다. 아들은 모 대학 무역학과 입학 수속을 밟는 중이라고 전했다. 딩회장은 다 읽은 편지를 접어서 서재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넣어 두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랍은 빈틈없이 채워져 나갔다. 그 안에 아들의 유학 생활을 담은 편지들이 연월 순으로 빼곡히 정리되었다. 이제 아들은 제법 유려한 필기체로 발신지 주소를 적어 보낸다. 그와 반대로 모국어로 쓴 편지엔 종종 틀린 철자가 보였지만, 딩회장은 그마저도 일종의 영광스러운 상흔 정도로 치부했다, 어차피 실무 전반은 후집사가 알아서 잘 관리할 터이니 사소한 철자 실수 같은 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딩회장의 원대한 상속 계획은 하나하나 차질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중간에 아들의 유학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제 아비를 닮아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탓이라며 딩회장은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후집사는 딩마오가 다니는 대학이 소위 ‘일반적인’ 대학치곤 학비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지적했지만, 톈진시 전체를 먹여 살리는 수운상회 회장에게 비용 따위는 터럭만큼도 대수롭지 않았다. 물론 해마다 아들의 편지 횟수가 줄어들고 편지 길이도 점점 짧아지는 것에 대하여는 딩회장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견딜 수밖에.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지 다섯 달 하고도 꼬박 이틀이 지나서야 딩회장은 다음 편지를 받았다. 아들은 드디어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당해 졸업식이 취소된 바람에 아버지가 굳이 독일까지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딩회장은 그 자리에서 아들의 편지를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 얼마 전 딩마오가 베를린 의과대학 건물에서 어떤 독일 여자와 함께 나왔다던, 후집사가 몰래 보낸 사용인들의 목격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딩회장은 밤새 뜬눈으로 뒤척였다. 동틀 무렵에야 그는 수화기를 들고 잠이 덜 깬 교환원에게 아들의 베를린 거주지 전화번호를 불러 주었다.

 

기나긴 다이얼 소리가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하염없이 늘어졌다. 이윽고 아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그때 딩회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술 취한 듯 시끄러운 소리가 아들의 목소리를 가려 버렸다. 아들이 무안한 듯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집이 시끄럽네요.」

「공부하라고 보냈더니 그따위 허튼 짓거리나 일삼는 거냐!」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변명 필요 없다. 당장 귀국해라.」

 

아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딩회장은 칼같이 전화를 끊었다.

 

모든 게 두렵고 낯설었다. 나날이 짧아진 안부 편지도, 이방인들의 시끄러운 고성방가도, 아들을 본 상회인들의 목격담도 애초에 딩회장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아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란 말까지 충동적으로 내뱉었지만, 지금은 하나뿐인 아들마저 온전히 자신의 손안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들이 아예 독일에 눌러앉겠다고 하면 생활비를 끊어야 할까? 그래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들에게 사준 독일 집을 팔아야 할까? 그래도 안 되면? 그러다 수년간 치밀하게 쌓아 올린 상속 계획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진다면?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결말은, 딩회장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딩마오가 돌아왔다. 톈진을 떠난 지 어언 십여 년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바람이 딩마오의 손목을 휘감았다. 딩마오는 비스듬히 손차양을 만들어 수운상회 대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장엄하고 웅장한 저택의 외형은 십여 년 전 모습 그대로였건만 마치 안개 속 외딴섬인 양 어딘가 비밀스럽고 답답한 인상을 자아냈다. 그저 기분 탓이라고만 하기엔 설명하기 힘든, 정체 모를 찝찝함이 지난번 아버지의 통화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는 급히 쫓기는 사람 같았다. 말수가 빨라지고 자꾸만 딩마오에게 뭔가 확답에 가까운 대답을 요구했다. 급기야 느닷없이 역정을 버럭 부리질 않나……. 딩마오는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멍해졌다. 그는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서도 흰 구름 사이를 지나가는 창밖을 보며 그날의 통화를 곱씹었다. 합리적인 추론 결과는 단 하나다. 아버지한테 법의학과 진학 사실을 들켰다는 것.

한편, 서재로 들어선 딩마오를 본 순간 아버지는 내심 안도했다. 그동안 아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그는 비로소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아들이 선뜻 돌아올 리 없지 않은가? 아버지 얼굴에 급격히 화색이 감돌았다. 불과 몇 분 후 딩마오가 수운상회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입장을 표명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침몰하는 배의 마지막 승선권을 따낸 승객처럼 기뻐했다.

 

- 법의학자.

 

단 네 글자 만에 딩이추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 저는 아버지가 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딩마오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오갈 데 없는 그의 시선이 서재 바닥에 나열된 기하학적 문양들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속인 건 딩마오 자신의 잘못이다. 그렇지만, 딩마오는 목을 꼿꼿이 세웠다.

 

- 제 뜻은 변함없습니다.

- 어림없는 소리. 네가 망자를 살려내기라도 할 셈이냐?

- 살려내진 못해도 왜 죽었는지는 밝혀낼 수 있겠죠.

- 독일의 법도는 그럴지 몰라도 여기 톈진은 다르다. 시신 인양대와 무당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어.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 인양대는 해하海河에 익사한 시신만 상대하지 않습니까? 무당은 또 어떻고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혼을 달랜답시고 제를 올려봤자 진실이 밝혀집니까?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딩마오를 말렸다. 그러나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분노한 아버지의 축객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딩마오는 제 발로 저택을 뛰쳐나갔다. 실의에 잠긴 딩이추의 얼굴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것이 딩마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최후였다.

 

“재떨이는 어떻게 할 거야?”

“필요 없어.”

“담배 케이스도 꽤 비싸 보이는데…….

“마음대로 해.”

“그럼 이거는?”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은 고故 딩회장의 만년필이었다. 딩마오는 잠시 고민하듯 만년필을 살펴보더니 별 미련 없이 궈더요우에게 건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잉도 데려올걸.’

 

아쉬운 속내를 삼키며, 궈더요우는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서랍을 차례차례 열어보았다. 이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면 아무리 못해도 석 달 치 밥값은 넉넉히 쓰고 남으리라.

 

후집사가 딩마오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상회 경영과 무관한, 아버지의 매우 사적인 유품들만 서재에 남겨뒀다고 했다. 딩마오는 그 말을 듣고도 얼마간 저택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딩마오의 소매를 잡아끈 이가 바로 궈더요우였다. 톈진 바닥에서 일명 ‘소하신’으로 통하는 궈더요우는 텅 빈 금고나 다름없는 고인의 서재를 마치 물속을 휘젓듯이 돌아다니며 용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찾아냈다. 고인이 생전에 사용한 재떨이, 영국제 만년필, 담배 케이스, 한정판 손목시계, 신형 타자기, 심지어 희귀본 고서들까지……. 책상에 일렬로 진열된 물건들은 고인의 유일한 혈육인 딩마오조차 생소하고 낯설었다. 딩마오는 신형 타자기와 재떨이를 옆으로 밀어두고 그 자리에 반쯤 걸터앉았다. 그는 궈더요우가 찾아낸 고서들을 휘리릭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이런 걸 좋아하시는지 몰랐네.” “아버지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아버지를 모른다!” 책상 밑에서 궈더요우가 경쾌하게 받아쳤다. “그게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궈더요우가 마지막 서랍을 닫으며 일어났다. 그가 겉옷을 펼쳐 한가득 담은 수많은 편지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

“이대로 다 가져간다?”

 

궈더요우는 은근슬쩍 딩마오의 안색을 살폈다. 머릿속에서 아까 계산했던 석 달 치 밥값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신 인양대라는 그의 직업 특성상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유족 얼굴만 봐도 견적이 나온다. 게다가 부친의 유품을 처리하는 아들이라면 하루에 열두 번도 마음이 뒤바뀌기 마련이다. 그래도 기왕 하나쯤은 챙겨도 되지 않을까……. 궈더요우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까 몰래 챙긴 만년필을 확인하려 하는데 딩마오가 코웃음 쳤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 왜, 그새 마음이 바뀌었어?”

“야! 네 아버지 유품이라며.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걱정 마. 후회 안 해.”

 

더 볼일도 없다는 듯 딩마오가 선선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잣집 자식들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나? 궈더요우는 며칠 전 약혼자의 사망 소식을 제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샤오란란을 떠올렸다. 그녀는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보다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삶과 죽음이 밥 먹듯이 엇갈리는 톈진 바닥에서 명명백백한 진실을 찾아내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궈더요우는 책상에 흩어진 편지들을 재빨리 그러모았다. 그는 서재를 막 나가려던 딩마오를 멈춰 세우고는 편지 더미를 딩마오의 가슴팍에 퍽! 소리가 나게 건넸다.

 

“안 가져가! 이런 건 돈도 안 돼!”

 

얼떨결에 편지를 돌려받은 딩마오가 다시 궈더요우에게로 넘겼다.

 

“다른 물건들 파는 김에 이것도 같이 처분하면 되잖아?”

“하다 하다 이젠 네 편지도 남한테 버려달라고 하냐.”

“사형이 남이야?”

“하!”

 

말이나 못 하면. 궈더요우가 혀를 내둘렀다.

© 2019 각 작품의 저작권은 작업하신 작가님들께 귀속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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